무념무상의 적!!! 193

여명의 눈동자 5회, 임팔 작전

오프닝 붙이고 자아~~~~ 시작!!! 딱 2년만에 다시 정주행 정말 오랜만이다. '지난 줄거리' 목소리 다시 감동이 올라온다. 오랜만에 '지난 줄거리'를 통해서 지난 1~4회를 다시 보니 뭐가 남자들은 성적 욕구만이 존재하는 짐승으로만 보인다. 지난 4화의 마지막 장면... 최대치(최재성)이 쥐터지고 있는 것을 무력하게 울면서 바라보고 있는 여옥(채시라)... 전쟁 필름을 보여주면서 전쟁 상황을 설명한다 이하 나레이션 "1943년 과달카날 섬에서 미군의 반격 제1보를 허용하면서 태평양의 전선은 급격히 기울어져갔다." "연합군의 반격은 태평양에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레도공로' 이미 일본군에 버마를 빼앗긴 연합군은 인도의 레도에서 중국 운남성에 이르는 장장 1천마일에 수송로 건설에 착수했다. 이 길이 뚫..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4-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상주 문재인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지,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통령의 참혹한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본 내가 사태 경과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나 자신부터가 밀려드는 자책감을 견딜 수 없는 마당에 내가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상황이 더더욱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장사지내는 상주가 되어야만 했다. 시신확인에서부터 운명, 서거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그렇게 길고 긴 5월 23일 하루가 넘어갔다.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

조선 목민관 열전 : 한겨레21 기획연재 전7부작 - 스크랩정리

목록 조선 목민관 열전 : 기획연재 : 한겨레21 한겨레21 h21.hani.co.kr 총 7부작으로 나온 기획연재 기사다. 다산 정약용을 이해하는데 좋은 기사인듯 싶다. 긁어올수는 없고(저작권 때문에) 링크들 정리하는 차원에서 작성 ※ 시대가 다른 만큼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시각인듯 싶다. 현대는 군주가 다스리는 시대가 아니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주권자의 기준이 어딘지를 명확히 하고 글들을 읽어야 할듯 싶다. 마치 국민을 백성으로, 지배를 받는 존재로 보는 시각으로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1부 베옷 입고 고향 돌아온 영의정 〈제807호〉 베옷 입고 고향 돌아온 영의정 임진왜란·정묘재란 때 임금의 절제 강조한 이원익… 다섯 차례 영의정 지냈으나 말년에는 돗자리 팔아 연명해 h2..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3-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치욕의 날 2009년 4월 30일, 노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검 청사로 출석하게 되었다. 치욕스런 날이었다. 여사님은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참고 있었고 대통령은 담담했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위로는커녕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대통령이 사저를 나설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모님이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대통령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여사님을 다독였다. 대검 청사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그의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중수 1과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2-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비극의 시작 그런 느낌이 사실로 확인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기업이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들병원 이상호, 김수경 회장이 세무조사를 받은데 이어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은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 2008년 7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찰수사가 세종증권 매각비리로 확대되면서 대통령 형님 노건평 씨가 수사 타깃이 됐다. 나중에야 모두 알게 되었지만 형님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사실 형님 문제는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각별히 신경을 썼던 일이라 아차, 싶었다. 세종증권 문제와 박연차 씨 문제도 안 좋은 낌새가 있긴 했다. 이런저런 불미스런 얘기가 나돌 때 민정수석실..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1-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정치보복 이 시기를 떠올리는 것은 지금도 고통스럽다. 온갖 회한이 가슴을 짓누른다. 워낙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일이 많아 한때는 법률적 대응 외에 정치적 대응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정치적 저의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면서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이 귀 기울여 주지 않으리라는 판단과 더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해 오직 인내하면서 철저하게 법률적으로만 대응하려 했다. 그러한 우리의 판단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대통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변하면서 정면으로 부딪혀 보았더라면…. 물론 그랬으면 더 나았을지, 대통령이 더 후련해 하고 더 힘을 내게 됐을지..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0-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시골생활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에서, 나는 양산에서 각각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봉하는 연일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방문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대통령을 불러냈다. 그들을 상대로 친환경 농업, 숲 가꾸기, 화포천 살리기 등을 주제로 얘기하는 대통령의 얼굴엔 그렇게 생기가 넘칠 수 없었다. 또한 대통령은 소박한 시민이자 전직 대통령으로서 뭔가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구상했다. 나는 양산에서 있으면서 가끔 봉하에 들렀다. 격식을 갖출 필요가 있는 자리에 배석하기도 하고 공식행사에 수행하기도 했다. 갈 때마다 좋았다. 양산에서 꾸려가는 내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비록 집수리가 덜 돼서 거의 한달 반가량을 계곡 옆 별채의 단칸방에..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19-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고향으로 돌아오다 마지막 며칠은 떠나는 일로 분주했다. 함께 수고해 준 수석, 비서관, 행정관, 행정요원, 여직원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들은 청와대에 있다고 하면 대단한 자리에라도 있는 양 생각했겠지만 ‘노무현의 청와대’여서 더욱 조심하고, 더 참고, 더 욕먹고,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했던, 눈물이 날만큼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사진 찍는 일 밖에 없었지만 언젠가 사진을 보며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2월 24일 밤, 대통령이 차관급 이상 모두를 초대해 베푼 만찬을 마치고 아내가 먼저 짐을 싸서 양산으로 내려간 바람에 더욱 을씨년스..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18-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그해 겨울 대선이 끝나고 본격적 퇴임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두어 달 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식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리는 차기 정부를 위해 여러 일을 성심껏 챙겼다. 특히 방대한 기록물을 정리해 넘기는 작업이 그랬다. 우리가 한 일을 역사에 남기는 차원이기도 했지만 당장 차기 정부에 꼭 필요한 일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국정의 연속성에 비효율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진심이었다. 참여정부의 인사검증 매뉴얼도 다시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해서 넘겼다. 이 매뉴얼이 다시 만들어진 게 2008년 2월, 그야말로 퇴임 직전이었다. 다음 정부를 위해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검증 시스템이 제..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17-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노란 선을 넘어서 회담이 결정된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 중 하나는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북한으로 가느냐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로 가셨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철도를 이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북한이 난색을 표했다. 개성 위쪽부터 선로가 시원찮은데 단기간에 보수가 힘들다고 했다. 남은 길은 육로였는데, 대통령이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고 북한 주민이 보는 가운데 평양까지 차로 간다면 그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 너무 밋밋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때 실무협의팀에 있던 의전비서관실 오승록 행정관이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대통령이 걸어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