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치욕의 날
2009년 4월 30일, 노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검 청사로 출석하게 되었다. 치욕스런 날이었다. 여사님은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참고 있었고 대통령은 담담했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위로는커녕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대통령이 사저를 나설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모님이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대통령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여사님을 다독였다.
대검 청사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그의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중수 1과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차분하게 최선을 다해 꼬박꼬박 답변을 했다. 놀라운 절제력이었다.
나는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신할 수 있었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그게 없다는 것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연차 회장과 대질을 시키겠다는, 검찰의 대단한 무례도 대통령은 참아냈다.
서로의 진술이 다르면 객관적 증거로 누구 말이 맞는지를 가리는 게 검찰의 일일진대 그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변호인단의 거부로 대질은 무산 되었지만, 오래 기다린 그를 만나 인사라도 나누시라고 해서 결국 박 회장을 조우하게 됐는데 대통령은 그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그 상황에서도 그를 위로했다.
조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은 정적만 흘렀다. 거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기소 이후엔 무죄를 자신했다. 검찰과 언론이 아무리 ‘여론재판’이나 ‘정치재판’을 해도 법은 법이다.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나 조작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 사건이 그랬다. 이길 수 있었다. 대통령도 그런 차원에서 ‘진실의 힘’, ‘명백한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을 믿었다.
검찰 조사라는 마지막 절차가 끝났지만 검찰은 질질 끌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들도 공소유지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면 그동안의 그 요란한 수사는 모두 무너져버린다. 불구속기소를 해도 공소유지가 쉽지 않고, 무혐의 처리를 하자니 그것도 마땅찮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아무 처리도 못하고 끌기만 한 것이다.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와 압박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어쩌다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했다. 가난이 그를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가난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한 일의 연장선상에서 정치를 하게 되었고 그런 진정성이 그를 결국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빈곤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살 집도 대출을 받아 지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도 빌리게 됐다. “나 자신만 정치적으로 단련되었지,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 놓은 그는 재산보다 4억 원 가량 많은 부채를 남기고 서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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