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그해 겨울
대선이 끝나고 본격적 퇴임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 두어 달 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식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리는 차기 정부를 위해 여러 일을 성심껏 챙겼다. 특히 방대한 기록물을 정리해 넘기는 작업이 그랬다. 우리가 한 일을 역사에 남기는 차원이기도 했지만 당장 차기 정부에 꼭 필요한 일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국정의 연속성에 비효율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진심이었다.
참여정부의 인사검증 매뉴얼도 다시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해서 넘겼다. 이 매뉴얼이 다시 만들어진 게 2008년 2월, 그야말로 퇴임 직전이었다. 다음 정부를 위해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사에서 망신을 산 경우는 역대 정부가 다 그랬고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임기 내내 인사 검증 매뉴얼을 발전시켜 왔고 차기 정부에서 잘 활용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음 정부가 하려들면 뭔가 찜찜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예산도 부담이 되는 일들은 가급적 다음 정부가 넘겨받지 않도록 애를 썼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 전용기 도입 문제였는데 알다시피 이것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미뤄져버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차려준 밥상을 걷어찬 경우였다.
각종 제도적 불비사항 등도 서둘러 보완했다. 심지어 청와대 내 작은 간이 목욕탕 수리, 관저로 올라가는 산책로 주변 단장 등 사소한 것들도 정비를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게 허망한 일이었다.
재임 기간 중의 기록물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마무리해서 가급적 남김없이 이관하는 일은 방대한 작업이었다. 그 작업을 내가 진두지휘 할 수밖에 없었다. 비서실 직원들은 몇 주일 밤을 새야 할 지경이 되자 “제대 말년의 생고생”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기도 했다.
한편으론 퇴임 이후 준비로도 바빴다. 여러 가지 검토 끝에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2006년 하반기 쯤에 작고하신 정기용 건축가의 설계로 사저도 지어 놓았다. 건축비는 은행 대출로 충당을 했는데 퇴임 후 책을 쓰거나 강연 수입 등으로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 개인적으로도 슬슬 퇴임 이후를 준비했다. 서울에 남는 것은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딱히 부산보다는 부산 근교의 시골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건만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심신이 워낙 지치기도 했고 마음도 많이 상해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대통령의 지지는 낮았고 당은 깨졌다. 정권 재창출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다. 진보진영 전체가 한꺼번에 추락했다. 당연히 국정을 맡은 우리 책임이 제일 컸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를 유배 보내는 심정이기도 했다.
경제적인 사정도 있었다. 원래 저축해 놓은 것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청와대에 있는 동안 다 까먹었다. 생활 때문에 변호사를 그만 둘 수는 없어 출퇴근이 가능한 곳을 찾다보니 양산 매곡을 고르게 된 것이다.
양산에서 살게 되면 대통령 계신 봉하는 가끔씩 가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퇴임 대통령으로 치러야 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수행하거나 혹은 배석이나 하면 될 줄 알았다. 그토록 자주 가게 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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