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어느 일요일 새벽 어머니가 나를 깨워 부산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행여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싶어 기차표 암표장사를 할 엄두를 내고는 나를 데리고 새벽 같이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는 역의 상황을 한동안 지켜보기만 했을 뿐, 시작도 하지 않고 그냥 발걸음을 돌리셨다. 아침때를 한참 넘긴 시간이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우리 모자는 집 근처에 와서야 토마토 몇 개를 사서 겨우 요기를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일은 어머니와 나만 아는 일로 남았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냥 돌아왔는지도 몰랐고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이번에 이 책을 쓰면서 어머니께 여쭤보았더니 어머니는 “듣던 거 하고 다르데”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더 이상 묻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