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그를 떠나보내며
봉하에 마련된 빈소에는 상상도 못할 인파가 밀려들었다. 그 많은 분들이 단 1~2분의 조문을 위해 몇 시간을 달려와 또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 뜨거운 뙤약볕도, 갑자기 쏟아진 폭우도 그 행렬을 흩어놓지 못했다. 장엄한 종교의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거기까지 오게 만들었을까….
장례문제를 논의하면서 선택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많은 논란을 거쳐 하나하나 결정해 나갔다. 국민장이냐 가족장이냐를 비롯해서 정부 측과의 장의위원회 구성하는 문제를 두고도 여러 차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영결식 장소, 노제와 운구 행렬의 장소, 장지 등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봉하 내에서 묘역을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결국 ‘국민적 추모의 공간’에 중점을 두고 지금 장소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국민 참여 방식의 박석 형태를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기도 했는데 비극의 장소인 부엉이 바위가 빤히 바라보이는 것을 여사님이 영 마음에 걸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형태로 완성된 후엔 모두 흡족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봉화산 사자바위에서 묘역을 내려다볼 때면, 그 장소가 원래부터 대통령의 묘소로 예정돼 있던 운명적 장소 같다는 생각을 한다. 땅 모양이 삼각형 형태여서 봉화산에서 흘러내린 지세가 수반이 있는 꼭짓점을 접점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인 봉하마을과 절묘하게 연결되지 않는가! 진작 그렇게 예정돼 있던 것일까, 운명의 조화를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큰 가닥이 잡힌 후엔 정부의 협량한 태도가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서울광장의 노제를 반대했고 만장까지 문제를 삼았다. 시민들의 감정이 격해져 대규모 시위로 번질 것을 두려워했고 만장 깃대가 시위용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격앙된 민심 앞에 벌벌 떠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나 영결식을 위엄 있고 질서 있게 엄수하려는 것은 그들보다 우리가 더 원하는 일이었다.
끝내 정부가 못하게 막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 추모사였다. 내가 그것을 제안했을 때 모두가 찬성했다. 워낙 건강이 안 좋으셔서 하실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도 일단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하지만 뜻밖에도 정부가 거부를 했다. 그 이유가 참으로 궁색했다. 전례가 없다는 것과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측의 거부로 영결식 추모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영결식 전날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 분향소를 방문해 추모 말씀을 해주셨다.
“노무현 당신, 죽어도 죽지 마십시오”로 시작해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로 끝나는 간절한 추모사였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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