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의 적!!!/정치는 삶이다.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2-29

밥빌런 2020. 6. 23. 22:04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비극의 시작

 그런 느낌이 사실로 확인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기업이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들병원 이상호, 김수경 회장이 세무조사를 받은데 이어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은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 2008년 7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찰수사가 세종증권 매각비리로 확대되면서 대통령 형님 노건평 씨가 수사 타깃이 됐다. 나중에야 모두 알게 되었지만 형님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사실 형님 문제는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각별히 신경을 썼던 일이라 아차, 싶었다. 세종증권 문제와 박연차 씨 문제도 안 좋은 낌새가 있긴 했다. 이런저런 불미스런 얘기가 나돌 때 민정수석실의 특감반이 조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업 쪽에서도, 노건평 씨 쪽에서도 매우 강력하게 부인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수사권이 없어 더 이상 파고들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단서가 있었거나 형님이 사실대로 얘기해 줬더라면 결코 덮고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제기했을 일이었다. 구속이 임박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할 때엔 이미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준이 아닐 만큼 형님은 그 일에 고약하게 엮여 있었다. 아예 모르고 터진 일이라면 아쉬움이라도 없을 텐데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더 파헤치지 못했으니 너무도 아쉬웠다.

 형님에 이어 정상문 총무비서관마저 불미스런 일로 엮여 구속되었다. 이 역시 박연차 회장이 고리였다. 대통령께 큰 실수를 하게 된 권 여사님은 우리에게 너무 면목 없어 했다. 사건 파악을 위해 우리와 논의하는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동석했지만 그게 아니면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피했다. 

 그 시기 대통령은 좀 이상했다. 당시 대통령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모르다가 우리가 권 여사님께 따져 물으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평소 같으면 굉장히 화를 내고 야단을 치실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게 이상하게 보였다. 도저히 달관할 수 없는 일을 달관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내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한 아무런 믿음을 못주니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 나는 오래 정치를 하면서 단련이 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

 대통령은 우리를 보는 일조차 민망해 하고 면목 없어 하셨다. 나는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자신에게 가혹했던 분이 당시 상황을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그저 딱하고 적정이 됐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무죄가 되리라는 확신으로 버텨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검찰과 언론이 한 통속이 돼서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아침저녁으로 공식 브리핑을 했다. 중수부장 이하 검사들도 수시로 언론에 수사상황을 흘렸다. 검찰 관계자라는 속칭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했다. 언론은 이 모든 것을 사실 확인 없이 고스란히 중계하며 기꺼이 그 공범이 되었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에 비해 우리 쪽은 대응할 수단도 사람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언론대응을 맡았는데,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면서, 때로는 봉하에 오가면서 기자들의 전화취재에 일일이 응대했다. 그 무렵 언론에 보도된 내 답변의 대부분은 운전 중에 이뤄진 것이다. 생각이나 말에 순발력이 있는 편이 못되는 내가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대응했지만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후회가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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