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노무현을 국회로 보내다 6월 항쟁 승리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7~8월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 되거나 해고 되었다. 사건 변론은 모두 내 몫이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사실상 변호사 업무에서 손을 놓고 현장을 누볐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대우조선 사건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부산지역 변호사 120명 중에서 기꺼이 선임계를 낸 91명을 포함, 99명이나 되는 대규모 공동 변호인단을 꾸려 재판에 임한 끝에 그는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변호사업무는 결국 정지되고 말았다. 1988년 4월의 13대 총선을 앞두고 노 변호사는 김영삼 총재의 영입제안을 받는다. 노 변호사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부산지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