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노란 선을 넘어서
회담이 결정된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 중 하나는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북한으로 가느냐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로 가셨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철도를 이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북한이 난색을 표했다. 개성 위쪽부터 선로가 시원찮은데 단기간에 보수가 힘들다고 했다. 남은 길은 육로였는데, 대통령이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고 북한 주민이 보는 가운데 평양까지 차로 간다면 그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 너무 밋밋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때 실무협의팀에 있던 의전비서관실 오승록 행정관이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대통령이 걸어서 분계선을 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북측의 양해를 얻어 임시로 선을 긋고 그것을 걸어서 넘는다면 아주 인상적인 모습이 연출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게 또 문제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작위적인 이벤트나 연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성과가 어떨지 알 수 없는 회담인데 마치 회담 자체가 성과인양 포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총대를 맸다. “북측하고 이미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그때서야 마지못해 수락을 했다. 추후에 북측이 동의해 줘서 겨우 허위보고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일은 회담이 성공리에 끝나고 난 뒤에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대통령 내외분이 걸어서 노란 분계선을 넘는 모습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 장면은 10.4 정상회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대통령께서도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 장면에 대해 매우 만족해 했다.
환송 나간 우리는 대통령 내외분이 북측 사람들에게서 꽃다발을 받고 환영 받는 모습을 분계선 이남에서 지켜보았다. 온갖 감회가 밀려들었다. 우리는 대통령 일행의 모습이 북쪽으로 사라진 뒤, 우리도 군사분계선 한번 밟아보자며, 행여 그 선을 넘으면 시비꺼리가 될까 조심하면서 노란 선 위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정상회담의 성과는 굉장했다. 정상회담의 정례화 문제를 제외하곤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추진하고자 한 의제들이 대부분 합의문에 담겨 있었다. 어디 가서 혼자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 감격스러웠다.
남북정상회담 전체를 두고 아쉬운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회담이 좀 더 빨리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의 BDA동결 조치 이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1년을 허송해 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 만일 그 공백 없이 정상회담이 제때 열렸더라면 남북관계는 훨씬 많은 진도가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아쉬운 문제는 국회비준동의를 받지 못한 일이었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정부로 넘어가기 전에 회담 성과를 공고히 해두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법적으로 국가 간 조약의 성격을 띠는 남북정상 간의 합의는 그 내용이 국가나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경우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이런 합의에 대해서는 국회비준동의를 받아두어서 그 지속성을 확보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당시엔 유엔에서도 지지결의를 할 만큼 분위기가 좋았고 한나라당도 감히 정략적 반대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당시 한덕수 총리가 끝내 안 했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후속 합의가 진행돼, 재정부담의 규모 등이 정해지면 그때 해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다가 결국 실기(失期)하고 말았고 정권이 바뀌면서 정상 간의 소중한 합의는 내팽개쳐지고 말았던 것이다. 민족의 불운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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