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의 적!!!/역사 읽기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16부작〉

밥빌런 2020. 5. 20. 00:36

대한제국 국기

 

대한제국의 상징. 우표, 주화 등에 사용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국장(國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한제국 국장
대한제국 국새

 

대한제국 애국가

대한제국 위키피디아

 

대한제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슷한 이름의 대한민국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제국(한국 한자: 大韓帝國, 영어: Korean Empire) 또는 구한국(舊韓國)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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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나무위키

 

대한제국 - 나무위키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외교에 힘을 쏟았다. 무력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 외교적 인식의 한계이기도 하다.[21] 처음엔 제국 선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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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별기획]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고종이 도성을 버렸다고? 아관파천 아닌 아관망명

대한제국의 역사는 아직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러시아 공사관 내의 ‘국내 망명정부’든, 덕수궁의 ‘대한제국 망명정부’든, 중국 상하이의 ‘해외 대한민국임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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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 → 갑오왜란(1894)으로
을미사변 → 을미왜변(1895)으로
아관파천 → 아관망명(1896)으로

 

<1> 식민지 프레임, 이제는 벗자

 

‘제2의 임진왜란’ 갑오왜란을 ‘갑오경장’으로 왜곡

1894년에 벌어진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20만 명 이상의 조선 백성이 처절하게 희생된 전쟁을 일제는 누락시켰다. 1894년 조선이 처한 국가 상황을 갑오경장이 아니라 갑오왜란의 시각으로 봐야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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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2차 봉기는 고종이 전봉준에게 거의(擧義) 밀서를 보냈다.
이런 내용은 1980년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2> 을미왜변과 대한제국

 

명성황후 칼로 찌른 인물, 낭인 아닌 일본 육군 소위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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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로 부르기도 하지만 분명 대한제국의 황후였다.
그리고 낭인이 아닌 일본 육군 소위의 계획적인 국가범죄다.
강범석 히로시마시립대학 명예교수의 『황후모살』(송·2010)
이종각 동양대 교수 『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메디치미디어·2015)

 

<3> 아관망명과 대한제국

 

의병과 손잡고 ‘국내 망명’ … 일제 만행에 ‘최대의 반격’

아관망명 이후 고종이 1년간 거실로 사용했던 러시아 공사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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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발령과 항일 의병

 

길 가는 사람 붙잡고 강제로 상투 잘라...왕후 살해 소식 겹치며 폭발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근대사- 단발령과 항일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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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왜 경운궁으로 이차했을까

 

경복궁 환궁 땐 다시 포로, 경운궁은 고종 ‘제2 망명지’

아관망명 3개월 뒤 베베르 러시아공사와 고무라 일본공사가 맺은 ‘베베르·고무라 각서’(1896. 5. 14)는 한반도 관련 양국의 첫 타협안이었다. 그로부터 1개월 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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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한제국 창건

 

1897~1910년 戰時 비상국가, 지상 과제는 일제와의 독립전쟁

고종은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에 앞서 ‘베베르·고무라 각서’(1896.5.14)가 체결된 직후부터 러·일 양국의 조선 공동보호국화 움직임을 간파하고 그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독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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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포일 기념 전문가 토론

 

무능하고 세상물정 몰랐다는 고종ㆍ명성황후, 실제로는...

일본의 침략주의는 대한제국이 국가나 황제 차원에서 진행한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대한제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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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왕정과 근대화 역설

 

대한제국, 근대국가 아니다?…유럽, 왕권 내세워 근대국 도약

오늘날의 영국·네덜란드·스페인·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룩셈부르크 등은 왕을 국가권위의 중심으로 섬기는 군주국이면서도 완전한 국민국가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3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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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선중화론과 ‘國喪 정치’
분노와 자각, 근대적 ‘민국’ 의지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명성황후의 장례식이 2년2개월이나 미뤄진 까닭

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성립은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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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로 불리기도 하지만 분명 대한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10> 독립신문의 변절

 

고종이 자금 댄 ‘정부대변지’ 독립신문은 어쩌다 친일신문으로 돌변했나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 최초의 시민단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 창건, 외세에 대한 독립 의지를 밝힌 독립문·독립관·독립공원 조성 계획 등은 모두 1896년에 일어난 일들이다.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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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이러니다.
고종의 정부기관지로 창립되어서 친일기관지로 폐간이 되다니...

 

<11>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변란

 

아관망명정부의 사교단체서 친일 정치단체로 … 왕권 탈취 노리다 자멸

1896년 2월 11일 아관망명이 성공한 직후 4월 7일 독립신문이 창간되었고, 6월 18일께 독립문 건립을 결정했으며, 바로 그 독립문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로 7월 2일 만들어진 것이 독립협회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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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상계엄체제와 원수부

 

경운궁 內 원수부는 계엄사령부 … 국방력 증강 이끈 최고 권력

한마디로 원수부는 대한제국이 ‘비상계엄 상태의 국내 망명정부’였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법제라고 할 수 있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676~678쪽). 시위대는 1년 새 정예병 2000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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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력히 국방력을 키웠지만...
이완용의 문서위조로 군대 해산 되면서 괴멸되고
그리고 이후 자유시참변으로 사실상 우리 독립된 무력집단은 와해되었다고 봐야한다.
참... 한숨 나오는 얘기...

 

<13> 광무개혁과 궁내부

 

1901년 서울은 이미 서양인도 감탄한 ‘근대적 대도시’

동도서기론은 ‘서기(西器)’는 직수입하되 ‘서도(西道)’는 무조건 배척하고 몰(沒)민족성·사대주의·반상차별·여존남비 등의 ‘동도(東道)’는 고수했기 때문이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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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개혁 - 위키백과

 

광무개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1897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제국이 시행한 개혁. 1897년 대한제국에서 집권한 수구파 행정부는 구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신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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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개혁 - 나무위키

 

광무개혁 - 나무위키

이 시기 대한제국은 서울 도시개조사업을 강력히 추진했다. 1896년 9월 28일 내부령 제9호 '한성부 도로의 폭을 규정하는 건'을 발령하고 주미 공사를 2년간 지냈던 이채연이[5] 한성부판윤을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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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갑진왜란과 국민전쟁

 

역사에서 사라진 ‘갑진왜란’… 41년 최장기 항전의 도화선

"러일전쟁의 최대 전리품으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병합은 격심한 민족적 저항에 직면해 4년에 걸친 군사행동을 수반하게 되었다. 평화적으로 합병이 이뤄졌다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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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군 의사를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고종은 대한독립의군 총장 이범윤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리고 충군애국심의 신존왕주의에 투철한 안중근에게 갔을 것으로 얘기한다.
안중근 장군은 일제의 법정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혔다.

 

<15> 3·1운동-윤봉길 의거-카이로선언

 

일제의 ‘대한’ 국호 말살작전...“한국 대신 조선으로 불러라”

정부 형태는 바뀌었지만 ‘대한’이라는 국가는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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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은 일본이나 중국처럼 한국의 영토에 대한 야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동맹국으로서 가장 적합한 조건의 강대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대한제국 시기에 한국에 범한 오류와 잘못까지 모두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승만 자신이 직접 명문(名文)으로 카이로선언에 한국조항을 넣은 공로를 윤봉길·김구·장개석 3인에게 돌렸던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16·끝> 에필로그

 

고종 망명 추진 중 독살 … 3·1운동·임정 탄생 밑거름 돼

대한제국 창건 120주년이 되는 2017년을 맞아 "‘식민지 프레임’ 이제는 벗자"는 제안으로 지난 8월 13일 시작한 이 연재를 이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일제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한제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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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독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고종 밀명이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고종 밀명이었다"

대한제국 관련 저서 4권 출간한 황태연 동국대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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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1897~1910 잊혀진 제국, 영토 빼앗겼지만 주권 투쟁 계속

 

대한제국, 임정·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이를 기념해 대한제국을 연구해 온 3명의 전문가가 ‘왜곡된 대한제국, 부활하는 대한제국’을 주제로 대담했다. 황 교수가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는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고, 곧바로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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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못 보게 만드는 요인은 소위 개화파 위주로 연구해 온 근대사의 프레임 때문”
“고종과 대한제국의 실패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일 뿐”

하나 더 추가 하면 개화파 만이 아니라 우파 인물 위주의 근대사 프레임이란 생각도 든다.

 

[특별기획] ‘한국학 120주년’ 러시아 상트대학을 가다

 

민영환 통역관 23세 김병옥, 유럽 첫 춘향전 한국어 강의

한국사 전공자인 그는 러시아 내 남아 있는 정부와 대학의 공식 문서, 신문 기사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김병옥을 포함한 러시아 내 한국인들의 삶을 추적해 왔다.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인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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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나

 

"병력 3만명, 대한제국은 아시아 2위 군사강국 이었다"

19세기 말 제기된 극동의 ‘근대화’란 ‘전근대’가 아니라 보편사적 차원의 ‘낮은 근대’에서 ‘높은 근대’로의 도약이었다. 고종은 1897년 당시 1000여 명의 신식 병력밖에 없었지만, 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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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깜짝 놀랬다.

나의 근대사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하구나 싶다.

중앙일보가 욕을 먹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대형 기획기사는 정말 괜챦구나 싶다.

일단은 스크랩 정리만 하고 나중에 좀 더 찬찬히 살펴봐야겠돠

 

ps2

훝어 보지만 너무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볼 것은 아니면서

그렇다고 일제사관의 시각으로 볼 것도 아니다.

확인된 것만 받아 들이고 힘 없는 나라의 처절함을 잊지는 말아야 할듯 싶다.

그리고 가만 읽다보면 참고가 되는 외국자료들이 주로 미국이나 일본쪽 이란 느낌이다. 

러시아나 현재 중국쪽의 자료는 많이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이건 당시의 좌파 였던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이 반영이 덜 되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젠 과거 좌파 활동의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재조명해서 찾아 봐야하는 일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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