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8-29
길을 돌아보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참여정부 인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임기 내내 있는 힘을 다했다. 능력이 모자라거나 생각이 미치지 못한 점이 있었을지언정, 늘 열심이었고 사심이 없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우리는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차분한 성찰과 복기(復棋)가 필요하다. 냉정한 마음으로 성공과 좌절의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복기는 정권을 운용한 우리뿐 만이 아니라 범야권,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때는 모든 것을 ‘참여정부 탓’이나 ‘노무현 탓’으로 돌리고, 노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분위기가 반전 되었다고 성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003년 참여정부 집권 시기에 비해 우리 진보 개혁진영의 역량과 집권능력은 얼마나 향상 되었을까. 진영 전체의 역량을 함께 모으는 지혜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는 선뜻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도도한 보수적 풍토와 여론을 주도하는 강고한 보수 세력이 엄존하는 정치 지형 속에서 진보 개혁진영이 요구하는 수준의 ‘개혁’과 ‘복지국가’를 정권의 힘만으로 해낼 수는 없다는 사실 -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여정부가 남긴 교훈이라 생각한다. 참여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좌 우 양쪽으로부터 부단한 공격을 받았다.
내가 이 시점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 개혁 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참여 정부 때 실패했던 개혁을 돌이켜 보면 이 사실은 명백해 진다. 국가보안법 철폐, 검찰 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문제 등등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개혁들은 하나같이 실패로 귀착되었다.
물론 개혁작업의 선두에서 정권을 운용했던 우리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치지형 속에서 기득권의 저항과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이며, 정부는 어떻게 추진하고 시민사회진영은 어떻게 지원하면서 정부를 견인할 것인가, 수많은 개혁 과제들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시기별로 해야 할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런 의제들에 대해 진보 개혁 진영은 얼마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문제는 크나큰 아쉬움을 남긴다.
다 합쳐도 소수를 넘지 못하는 우리 진영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기는커녕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분열하지는 않았던가. 우리 진영의 근본주의가 어떠한 타협도 용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 경영에 대해, 나아가 외교 안보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했던 것은 아닌가. 조직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전략적 접근을 하지 못한 채 무리한 요구를 거듭함으로써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진보 개혁 진영의 모든 역량을 한 데 모아내기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는 통합이 바람직한 방안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집권 후를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집권 후에도 함께 힘을 모아 개혁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려면 단일화 보다는 더 놓은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진보적 성향이 다수를 이뤄 진보 개혁 진영 안에서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도 대세를 그르치지 않게 될 때까지는 통합된 정당의 틀 안에서 정파 간의 연립정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